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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- Only Lovers Left Alive (2013)
영화 평론가 듀나의 리뷰를 인용하자면, "틸다 스윈턴, 톰 히들스턴, 미아 바시코프스카. 이들을 그냥 갖다놓기만 해도 뱀파이어 영화의 반이 만들어집니다."고 하는데, 그 의견에 깊이 동감한다. 개인적으로 별 관심이 없었던 미아 바시코프스카라는 배우는 재쳐두더라도, 틸다 스윈턴과 톰 히들스톤, 이 두 배우는 외모에서부터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. 틸다 스윈턴은 50대이고 톰 히들스톤은 30대 초반이긴 하지만, 두 배우 모두 20대라고 해도, 30대, 40대, 50대라고 해도, 그 어떤 나이라고 해도 납득이 갈 만한, 말 그대로 조건부 영생을 누리는 뱀파이어라는 이미지에 들어맞는다. 뿐만 아니라, 그 나른하고 권태로운 분위기, 지적이면서도 한편으론 유치하고 천박하기도 한 이미지는, 오랜 세월의 경험을 쌓아 지혜로워지면서도 본능에 의해 피를 탐할 수 밖에 없는 뱀파이어의 양면성에 부합한다.
배우는 그렇다고 치고,
영화의 내용은 특별하지 않다. 인간을 좀비라고 부르며, 썩어버린 인간 사회를 증오하며 깊은 권태를 느끼는 음악가 아담과, 인간의 음악, 문학 등을 좋아하며 삶 자체를 즐기라고 설득하는 이브의 나른하고 탐미적인 사랑 이야기이다. 그 사이에 오가는, 문학과 음악, 역사에 대한 뱀파이어 식의 농담들, 픽션들이 흥미롭고, 그들이 지적 생명체로서의 뱀파이어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현대적 생활상들은 실소를 불러 일으킨다. 아담이 슈베르트에게 곡을 써줬다던가, 바이런과 친분이 있다던가, 존 허트가 연기한 크리스토퍼 말로가 셰익스피어였다던가 하는 설정들은 어떤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아니지만 이 모든 깨알같은 설정들이 이 영화의 전체를 구성하고 있으며, 그런 유희들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것이 이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의 태도일 것이다.
극 후반에 갑작스럽게 치닫는 위기에, 끊임없이 자살하려던 아담도, 삶을 즐기자던 이브도 굶주림과 절박함에 허덕이며 모로코 탕헤르를 비틀거리며 배회하는 모습도 그런 양면적 이미지와 함께 웃음을 불러일으킨다. 그래. 나에게 이 영화의 장르를 말해보라고 하면, 뱀파이어 일상물 같은 소소한 코믹물이라는 대답이 먼저 나올 것 같다.
렛 미 인에 이어서, 또다시 뱀파이어 영화가 내 영화 목록에 들어왔다.
덧. 영어 제목을 직역한 한글 제목이 엄청 마음에 든다.